이벤트
| 제목 | [오태식의 알바트로스] 맛있는 골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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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8년 07월 24일 | 작성자 |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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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찢어질 듯 가난했다. 하지만 서로를 너무나 사랑했던 부부는 상대가 눈치채지 않게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 남편은 아내의 긴 금발 머리에 어울리는 빗을 생각했다. 아내는 오래되고 낡은 남편의 시곗줄을 바꿔주고 싶었다.
아내의 긴 머리는 온데간데없고 아주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그렇게 아끼던 머리를 잘라 판 것이다. 남편 역시 선물 비용을 위해 주저 없이 대대로 물려받은 소중한 시계를 처분했다. 부부는 상대를 위해 가장 아끼는 물건을 아낌없이 버린 것이다. 비록 크리스마스 선물은 무용지물이 됐지만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어느 누구보다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들이 흘린 눈물은 행복이었다. 어렸을 때 읽어 보았을 이 짧지만 감동적인 스토리는 오 헨리 단편소설집에 나온다. 요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 이가 많아졌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소확행`이라는 말이 등장한 이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만족을 느끼는 이가 많아진 것이다. 저자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돼 있는 속옷을 볼 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오 헨리 단편소설 속 부부가 찾은 행복은 소확행은 아닐 것이다. 굳이 이름 붙인다면 `불확행`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가난이라는 불행 속에서 찾은 확실한 행복인 것이다.
골프처럼 확실한 행복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운동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천상의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즐기고 있을 고 고우영 화백은 평소 `골프3락`을 설파했다. `맛있는 골프`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마음에 쏘~옥 드는 동반자들과 라운드를 한 뒤 샤워하고, 시장기가 느껴질 때 맛깔스러운 음식에 술 한잔을 곁들이고 이어 남의 차 얻어 타고 귀가하는 길에 한잠 자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고 했다. 가히 골프의 소확행이라 할 만하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골프를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은 넘쳐 난다.
파3홀에서 혼자 온그린한 후 퍼터를 들고 유유히 걸어갈 때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가장 멀리 티샷을 날린 기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거꾸로 가장 티샷을 짧게 날리고도 핀에 공을 가장 가깝게 붙였을 때도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OB 구역으로 날아가던 공이 나무나 도로를 맞고 오히려 거리 이득을 더 본 경우는 또 어떤가. 잘못 친 공이 깃대를 맞고 핀에 붙어 OK(컨시드)를 받았을 때는 입가에 미소가 가득해진다. `나이스 미스샷`이다. 핀에 붙기만 해도 감지덕지였던 롱퍼팅이 이 고개, 저 고개를 넘다가 홀로 사라질 때의 쾌감도 경험해보지 않고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아니, 골프 예약한 날부터 라운드 가는 날까지 기다리는 것만 해도 로또를 사고 추첨일을 기다리는 일 못지않게 즐겁다.
물론 약간 놀부 심보의 골프 즐거움도 없지 않다. 배판을 불렀는데 상대가 모두 OB를 낸다. 라운드를 마치고 나니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상대가 버디 기회에서 보기를 범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차는 쌩쌩 달리고 있는데 반대 차선이 꽉 막힐 때도 묘한 쾌감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이건 모두 `남불나행`, 즉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그런 골프의 즐거움이다.
뭐 그것까지도 괜찮다. 하지만 그 재미있는 골프를 하면서 짜증을 부리고, 상대를 속이고, 동료의 화를 돋우는 골퍼도 없지 않다.
골프에서 느껴야 할 가장 필요한 소확행은 남을 배려하는 즐거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남행나행(남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이 되는 그런 골프 말이다. 그게 진짜 맛있는 골프다.
출처: 매일경제 2018.7.21 A30면 오태식 스포츠레저부장 ⓒ 매일경제 & m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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